처음 자취를 시작하면 대개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가득 채웁니다. 그리고 2주 뒤, 반쯤 쓴 것들을 버립니다. 애호박은 물러 있고, 대파는 끝이 노랗고, 사둔 소스는 뚜껑도 안 열었습니다.
문제는 양이 아니라 순서입니다. 재료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. 계란 하나로는 계란프라이뿐이지만, 여기에 밥이 더해지면 간장계란밥과 볶음밥이 생기고, 김치가 더해지면 또 몇 가지가 열립니다. 어떤 재료를 먼저 사느냐에 따라 같은 돈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 수가 달라집니다.
그래서 감으로 고르는 대신 계산해 봤습니다. 한국 요리 275가지 전부를 놓고, 하나씩 더할 때마다 만들 수 있는 요리가 가장 많이 늘어나는 재료를 순서대로 뽑았습니다. 소금·간장·식용유 같은 기본 조미료는 이미 있다고 봤습니다.
보통의 자취 재료 목록에는 양파와 대파가 맨 앞에 나옵니다. 그런데 계산해 보면 둘 다 10위 안에 들지 못했습니다. 양파와 대파는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지만, 혼자서는 어떤 요리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. 다른 재료가 있어야 비로소 쓸모가 생깁니다.
대신 배추김치가 4번째로 올라온 게 눈에 띕니다. 김치는 그 자체로 이미 반찬이면서, 김치찌개·김치볶음밥·두부김치처럼 주재료 노릇까지 하는 몇 안 되는 재료입니다. 게다가 오래 갑니다. 시어도 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찌개용으로 더 좋아집니다.
두부가 5번째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. 부치면 반찬, 끓이면 찌개, 으깨면 무침이 됩니다. 값도 싸고 손질도 거의 없습니다.
이게 "무엇을 많이 쓰느냐"와 "무엇이 요리를 완성시키느냐"의 차이입니다. 장을 볼 때 필요한 건 후자입니다.
빠른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. 평균 27분입니다.
| 요리 | 시간 | 방식 |
|---|---|---|
| 간장계란밥 | 5분 | 간단 |
| 계란말이 | 10분 | 전 |
| 오이무침 | 10분 | 무침·샐러드 |
| 무생채 | 10분 | 무침·샐러드 |
| 두부부침 | 10분 | 전 |
| 찬밥 누룽지 | 10분 | 구이 |
| 청양고춧가루 무침 | 10분 | 무침·샐러드 |
| 계란찜 | 15분 | 찜 |
| 계란국 | 15분 | 국·탕 |
| 김치볶음밥 | 15분 | 밥 |
| 두부김치 | 15분 | 볶음 |
| 시금치된장국 | 15분 | 국·탕 |
| 볶음밥 | 15분 | 밥 |
| 감자채볶음 | 15분 | 볶음 |
| 시금치나물 | 15분 | 무침·절임 |
| 무나물 | 15분 | 무침·절임 |
| 된장찌개 | 20분 | 국·탕 |
| 무국 | 20분 | 국·탕 |
| 돼지고기 김치볶음 | 20분 | 볶음 |
| 삼겹살구이 | 20분 | 구이 |
| 두부조림 | 20분 | 조림 |
| 현미식초 오이피클 | 20분 | 무침·절임 |
| 김치찌개 | 25분 | 국·탕 |
| 오므라이스 | 25분 | 밥 |
| 제육 덮밥 | 25분 | 밥 |
| 비빔밥 | 25분 | 밥 |
| 제육볶음 | 25분 | 볶음 |
| 감자조림 | 25분 | 조림 |
| 감자전 | 25분 | 전 |
| 현미 비빔밥 | 25분 | 밥 |
| 샥슈카 | 25분 | 구이·볶음 |
| 계란장조림 | 30분 | 조림 |
| 감자 샐러드 | 30분 | 무침·샐러드 |
| 오이소박이 | 30분 | 무침·절임 |
| 탕수육 | 40분 | 튀김 |
| 닭볶음탕 | 45분 | 찜·푹 끓임 |
| 간장치킨 | 45분 | 튀김 |
| 양념치킨 | 45분 | 튀김 |
| 돼지고기 김치찜 | 50분 | 찜·푹 끓임 |
| 닭곰탕 | 1시간 이상 | 찜·푹 끓임 |
| 돼지갈비찜 | 1시간 이상 | 찜·푹 끓임 |
| 수육 | 1시간 이상 | 찜·푹 끓임 |
| 갈비탕 | 1시간 이상 | 찜·푹 끓임 |
조리 시간은 재료 손질부터 완성까지입니다. 재우기·불리기처럼 손을 떼고 기다리는 시간은 뺐습니다. 한 시간을 넘어가는 것은 따로 표시했습니다.
2번과 9번이 돼지고기와 닭고기입니다. 둘 다 열어주는 요리가 많지만, 자취 냉장고에서 가장 먼저 상하는 것도 고기입니다. 사 온 날 한 끼 분량씩 나눠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이 문제가 사라집니다. 덩어리째 얼리면 쓸 때마다 통째로 녹여야 해서 결국 못 씁니다.
무 한 통은 자취 기준으론 큽니다. 무생채·무나물·무국을 다 만들어도 남습니다. 반 통으로 파는 걸 고르거나, 남으면 썰어서 말려두면 오래 갑니다.
3번 밥은 한 번에 요리를 다섯 가지나 열어줍니다. 다만 먹을 때마다 새로 짓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. 한 번 지어서 한 공기씩 나눠 얼려두면, 평일 저녁에 전자레인지 2분으로 밥이 해결됩니다.
장을 보고 나면 다음 문제가 생깁니다.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는 알겠는데, 그걸로 뭘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. 그럴 때 쓰라고 만든 도구가 있습니다. 있는 재료를 누르면 지금 바로 되는 것과, 하나 둘만 사오면 되는 것을 나눠서 보여줍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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